교육 이야기

나라사랑 '영어 스피치' 대회?

류현민 2012. 4. 26. 01:36

나라사랑을 영어스피치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하여 서울남부보훈지청에서는 청소년들이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실시한다는 '나라사랑 영어 스피치대회'. 영어로 말하는 나라사랑,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울남부보훈지청에서 개최하는 '제1회 나라사랑 영어 스피치대회'를 안내하오니, 귀 학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에서 보낸 공문이다.

이번 공문만을 문제삼자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사가 버젓이, 아주 당연하게 개최되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영어에 미친 사회, 왜 영어를 특별대우하는가?

나라사랑 말하기대회를 왜 영어로 해야할까? 이 정부들어서 '오뤤지'파문부터 '영어공교육 강화'정책까지 영어 중시 정책은 끊이지 않는다. 영어 학원에 토익, 토플, 텝스에 이어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까지 영어 점수가 없이는 대학도 회사도 들어가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반면 다른 과목은 잘 못해도 영어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국어 실력에도 영어로 말할 줄만 안다면 들어갈 수 있는 대입 특별전형이 있다. 우리말 실력보다 영어실력이 중요한 사회. 우리말과 글이 국어인지, 영어가 국어인지 과연 우리 교육은 영어에 쏟는 것만큼 우리말과 글에 대해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영어를 공용어라도 만들고 싶은 것인가?

영어를 못하면 낙오자로 인식되는 사회, 동네에서 채소파는 아주머니까지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만들겠다며 전국민이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기를 부추기는 정부의 영어 정책은 단순히 영어교육이 사교육을 유발하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키는 문제 그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나라사랑'의 마음은 그렇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던 그 때 우리말과 글을 쓰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되찾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고 싸움이었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서고 한참 지난 2012년 우리는 '영어'라는 외국어에 자기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우리말과 글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번 대회를 개최하고 홍보하는 사람들이 '나라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해보길 권하고 싶다. '나라사랑'이 무슨 행사 한 번 개최하고 참가한다고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말과 글, 그리고 입시와 영어교육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알게 될 때 비로소 나라사랑의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이루어놓은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될 때 진정으로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